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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확보라는 오랜 어려움에도’, 2024년 3분기 독립영화의 약진을 분석하다 - <장손> <그녀에게> <딸에 대하여>를 중심으로
来源:3377TV人气:19更新:2024-11-08 18:30:03
<해야 할 일>
엔데믹 이후로도 극장은 좀처럼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는 추세다. 그럼에도 2024년엔 몇몇 주목할 만한 성과가 있었다. 지난 2월 개봉한 <파묘>, 4월 개봉한 <범죄도시4> 두편이 누적 관객수 1천만명을 넘어섰고 7월에 개봉한 <파일럿>이 471만명, 9월 개봉한 <베테랑2>가 751만 관객을 모객하며 흥행했다. 몇몇 작품에 주목도가 쏠린 상황 등에 관해선 추가 논의가 필요하겠으나 앞의 결과만 놓고 본다면 상업영화의 경우 화제성을 이끈 작품이 분기별로 존재했던 셈이다. 독립영화 진영은 어떨까. 올해 두드러지는 특징은 독립영화 개봉작 수, 그리고 유의미한 반응을 이끌어낸 작품의 장르 및 주제가 상하반기에 판이하게 달랐다는 점이다. 상반기부터 살펴보자.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에서 발표한 ‘2024년 상반기 한국 영화산업 결산’ 자료에 따르면 상반기 독립예술영화 흥행 10위권에 든 한국영화는 총 3편으로 그중 1위에 다큐멘터리 <건국전쟁>, 7위에 <길위에 김대중>이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에도 다큐멘터리 <문재인입니다>가 2023년 한국 독립예술영화 흥행 1위로 기록된 바 있는데, 2021년부터 이어져온 다큐멘터리 강세의 현상이 올해에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독립영화 개봉작 수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은 8월에 들어서면서부터다. 장건재 감독의 <한국이 싫어서>가 6만 관객을 동원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부터 국내외 영화제에서 두루 소개된 <장손> <그녀에게> <딸에 대하여> 등의 기대작들이 나란히 9월 극장에 걸렸다. 이 세 작품은 넓게는 ‘가족’이란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을 텐데, 그래서인지 추석 연휴가 있는 9월에 개봉해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냈고 결과적으로 2만 관객을 넘어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다수 독립영화의 관객수가 1천~2천명에 그치며, 정치다큐멘터리에 편중됐던 상반기의 흐름에 유의미한 파장을 만들어냈음을 고려하면 위의 성과는 괄목할 만하다. 그러나 이러한 독립영화들의 성과와 변화의 흐름이 유독 3분기에 집약된 이유는 무엇일까. 특정 작품들의 ‘2만 관객’이란 결과엔 어떤 전후 관계가 자리했는지 면밀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평단과 관객의 지지를 고르게 받다
<한국이 싫어서>
3분기, 나아가 4분기로 이어지는 올해 독립영화 개봉작들의 특성을 먼저 살펴보자. 주제 면에선 크게 청년과 세대, 소수자, 여성, 노동으로 좁혀볼 수 있다. 청년과 세대의 문제는 <한국이 싫어서> <장손>, 11월 개봉을 앞둔 <아침바다 갈매기는>을 중심으로 이야기해볼 수 있다. <한국이 싫어서>는 동시대 청년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비춘다. 주된 화자는 계나(고아성)로 한국에선 더이상 희망이 없다고 판단해 해외로 떠나 새 삶을 도모하는 인물이다. 계나와 비슷한 캐릭터가 <아침바다 갈매기는>에도 등장한다. <아침바다 갈매기는>은 스러져가는 어촌을 배경으로 젊은 선원 용수(박종환)가 돌연 자취를 감추며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다만 이 영화에선 타국에서 새롭게 시작하려는 청년 용수가 아닌, 마을에 남은 부모 세대의 노인들에게 카메라를 비춘다는 차이점이 있다. <장손>은 삼대에 걸친 대가족의 서사를 펼쳐내는 영화다. 주인공이자 삼대 독자인 성진(강승호)의 존재감이 두드러지진 않지만 그의 시선을 경유해 가족간 갈등을 그리며 한 세대의 퇴장, 바통을 이어받는 청년세대의 모습까지 두루 담아낸다. 세 영화는 청년층이 목도한 문제들, 세대간 갈등과 가치관의 변화와 같은 동시대 한국의 상황을 반영한다. <한국이 싫어서>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 개막작이었으며, <장손>은 지난해 부산영화제 3관왕, <아침바다 갈매기는>이 올해 부산영화제 3관왕임을 고려할 때 세 작품 모두 평단과 관객의 지지를 고루 받았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올해 공개된 퀴어영화 중에선 정체성 혼란, 주변의 반대와 같은 익숙한 묘사에서 나아가 성소수자 커플이 연인 관계를 지속할 때 맞이할 현실적인 문제와 불안을 다룬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딸에 대하여>는 엄마의 시선으로 동성 연인과 동거하는 딸의 노년을 가늠해본다. <럭키, 아파트>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연출된다. 레즈비언 커플인 선우(손수현)와 희서(박가영)는 아래층 할머니의 죽음을 목도하는데, 우연히 그에게 동성 연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뒤로 선우는 그의 죽음에 나이든 자신을 비춰보게 된다. 여성영화의 주된 이슈 중 하나는 임신과 양육이다. <그녀에게>는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 <최소한의 선의>에서는 난임을 겪는 교사와 임신한 학생 사이의 연대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해야 할 일>은 권리를 박탈당한 노동자가 아닌 동료의 해고를 결정해야 하는 또 다른 노동자의 입장에서 구조조정의 문제점을 짚는다. 주인공이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그간 노동영화에서 잘 다뤄지지 않던 영역의 화자를 내세웠다는 점에서 올해 부산영화제 수상작인 <3학년 2학기>와도 같이 논해볼 수 있을 것이다(<3학년 2학기>에선 직업계고 출신의 실습생들이 주인공이다). 앞서 살펴본 영화들이 전에 없던 주제를 도출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같은 주제의 영역 안에서 한 단계 논의를 확장하거나, 사건을 바라보는 주체의 위치를 달리해 시야를 환기하고 사각지대를 조명하려는 시도가 올해 독립영화에서 다수 감지됐다. 어려운 시기에도 창작자들은 끊임없이 분투하는 중이다.
‘독립예술영화 개봉지원 사업’의 변화
<그녀에게>
종종 ‘보고 싶어도 극장에 볼 영화가 없다’는 불만이 들려오곤 한다. 그렇다면 호평받은 독립영화가 밀집된 현 상황은 오히려 호재일까. 하반기에 독립영화들이 연이어 개봉한 데엔 영진위의 ‘독립예술영화 개봉지원 사업’의 변화가 주요하게 작용했다. 지난해 영진위는 상반기, 하반기 총 2회에 걸쳐 독립예술영화 개봉지원을 진행했다. 그러나 올해는 독립영화 개봉지원이 상반기 1회로 통합됐으며 지원 부문 또한 배급사 지원으로 일원화됐다. “예년에는 지원작으로 선정된 경우 약정체결을 한 뒤 9개월 이내에 개봉하면 됐으나 올해는 11월까지 개봉을 완료해야 했다. 그로 인해 지원 발표가 난 후 작품들이 급하게 개봉을 준비했고 9월~11월 사이에 작품들이 몰리게 된 것”(제정주 아토 프로듀서)이다. 개봉지원 사업 결과가 6월 중순에 발표됐기 때문에 “개봉 일정을 고려해볼 수 있던 건 8월 이후였다. 배급사 입장에선 선택할 수 있는 개봉일의 폭이 좁아졌다.”(이지혜 찬란 대표) 마케팅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배급지원이 상하반기로 나뉘었을 땐 여름, 겨울 등 영화마다 어울리는 개봉 시기에 맞춰 지원서를 냈고 그 결과에 따라 마케팅 방향도 잡아갔다. 올해는 그런 시도가 아예 불가한 구조였다.”(조계영 필앤플랜 대표) 독립영화가 관객을 모을 방법 중 하나는 관객과의 대화다. 하지만 작품이 몰리면서 극장에선 개별 작품의 요청대로 이벤트용 시간을 배정하기 어려워졌다. “특히 올해는 재개봉작이 많았다. 독립예술영화관은 상대적으로 다양하게 시간표를 배치한 반면 멀티플렉스 극장은 여전히 관객이 몰릴 것으로 판단되는 영화들에 편중됐다. 결국 수많은 독립영화가 몇 안되는 독립예술영화관의 자리를 나눠가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제정주 프로듀서의 말이다.
일부 작품은 자구책을 강구했다. 9월에 개봉한 네편의 영화 <딸에 대하여> <그녀에게> <장손> <해야 할 일>의 감독과 제작·배급진이 합심해 시작한 ‘한국독립영화 상영캠페인’이 일례다. “극장 개봉을 하면 오랜 기간 영화를 상영하기 쉽지 않고 몇주만 지나면 바로 부가시장으로 넘어가는 문제점이 있다. 그래서 개봉일 기준 8주차까지 극장 상영을 유지하고, 한 영화가 독립예술영화관을 독점하지 않으며 서로 독립영화를 권하고 알리자는 취지”(제정주)로 위의 캠페인이 시작됐다. 10월에는 <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 <공작새> <최소한의 선의> <럭키, 아파트> 네편이 뒤이어 캠페인에 참여했으며 홍보를 담당하는 김태주 로스크 실장은 “기회가 되는 한 해당 캠페인은 장기적으로 이어질 예정”이라고 전했다.
<딸에 대하여>
이런 상황에서도 <딸에 대하여> <그녀에게>는 관객수 2만명을 넘겼고 <장손>은 3만 관객을 돌파했다. 혹여 함께 극장에 걸린 상황이 시너지효과를 낸 것은 아닐까. <그녀에게>를 배급한 김진우 영화로운 형제 실장은 “개별 영화의 작품성이 좋아서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그녀에게>는 가족영화로 포지션을 잡아 애초부터 9월 개봉을 예정하고 있었다. 또한 내부적으로는 여러 차례 진행된 단체관람의 덕을 본 것이 크다고 보고 있다.”(김진우) <해야 할 일>을 배급한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는 “배급지원 발표가 늦어지면서 9월 영화들이 거의 주 단위로 개봉했고 독립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 할지라도 피로도가 있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10월에 개봉한 독립영화들은 9월 개봉작만큼의 주목도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요컨대 ‘2만 관객’이라는 몇몇 결과는 기대작들이 각자의 작품성을 인정받아 안정적인 흥행으로 이어진 것일 뿐 결과적으론 영진위 배급지원 사업의 변화로 인해 다수의 독립영화가 작은 파이를 더 작게 나눠가지며 피해를 입는 상황이 벌어졌다.
캠페인, 단체관람, 찾아가는 영화관 등 개별 작품들의 시도는 분명 유의미하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배급사 인디스토리의 한 관계자는 “하반기에 개봉작들이 몰린 건 맞지만 평소에도 동시기 개봉작들은 항상 있었고 독립영화들에 배정되는 상영관과 스크린이 적다는 것 자체가 아쉬운 부분”이라고 의견을 전했다. “9월 개봉작들이 연달아 2만명을 넘기는 성적을 기록했으니, 시장을 흔들 좋은 작품이 나와 준다면 분위기를 다시 반전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관객들이 좋은 영화를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독립영화가 자력으로 영화를 제작하고 개봉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지원사업까지 줄어든다면 상황은 더 힘들어질 것이다.”(이지혜) “영진위로 표상되는 정부의 지원 및 독립예술영화상영관과 스크린 수의 충분한 확보”(심재명)가 여전히 중요하다.
앞서 확인했듯 창작자들은 새로운 이야기를 길어올리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 적은 수일지언정 좋은 작품엔 여전히 관객의 발길이 이어진다는 것도 증명됐다. 그러나 상업영화만큼의 경제적·수치적 성과를 내지 못한다는 이유로 독립영화에 대한 지원이 점점 줄어든다면, 가령 올해와 같이 배급지원의 횟수가 1회로 줄고 기타 지원의 예산 규모 또한 줄어든다면 수많은 작품들이 빛도 보지 못한 채 사라지게 될 것이다. 진실로 극장에서 볼 영화가 없는, 걸려 있는 영화가 부재한 시대가 오지 않길 바란다.
엔데믹 이후로도 극장은 좀처럼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는 추세다. 그럼에도 2024년엔 몇몇 주목할 만한 성과가 있었다. 지난 2월 개봉한 <파묘>, 4월 개봉한 <범죄도시4> 두편이 누적 관객수 1천만명을 넘어섰고 7월에 개봉한 <파일럿>이 471만명, 9월 개봉한 <베테랑2>가 751만 관객을 모객하며 흥행했다. 몇몇 작품에 주목도가 쏠린 상황 등에 관해선 추가 논의가 필요하겠으나 앞의 결과만 놓고 본다면 상업영화의 경우 화제성을 이끈 작품이 분기별로 존재했던 셈이다. 독립영화 진영은 어떨까. 올해 두드러지는 특징은 독립영화 개봉작 수, 그리고 유의미한 반응을 이끌어낸 작품의 장르 및 주제가 상하반기에 판이하게 달랐다는 점이다. 상반기부터 살펴보자.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에서 발표한 ‘2024년 상반기 한국 영화산업 결산’ 자료에 따르면 상반기 독립예술영화 흥행 10위권에 든 한국영화는 총 3편으로 그중 1위에 다큐멘터리 <건국전쟁>, 7위에 <길위에 김대중>이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에도 다큐멘터리 <문재인입니다>가 2023년 한국 독립예술영화 흥행 1위로 기록된 바 있는데, 2021년부터 이어져온 다큐멘터리 강세의 현상이 올해에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독립영화 개봉작 수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은 8월에 들어서면서부터다. 장건재 감독의 <한국이 싫어서>가 6만 관객을 동원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부터 국내외 영화제에서 두루 소개된 <장손> <그녀에게> <딸에 대하여> 등의 기대작들이 나란히 9월 극장에 걸렸다. 이 세 작품은 넓게는 ‘가족’이란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을 텐데, 그래서인지 추석 연휴가 있는 9월에 개봉해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냈고 결과적으로 2만 관객을 넘어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다수 독립영화의 관객수가 1천~2천명에 그치며, 정치다큐멘터리에 편중됐던 상반기의 흐름에 유의미한 파장을 만들어냈음을 고려하면 위의 성과는 괄목할 만하다. 그러나 이러한 독립영화들의 성과와 변화의 흐름이 유독 3분기에 집약된 이유는 무엇일까. 특정 작품들의 ‘2만 관객’이란 결과엔 어떤 전후 관계가 자리했는지 면밀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평단과 관객의 지지를 고르게 받다
<한국이 싫어서>
3분기, 나아가 4분기로 이어지는 올해 독립영화 개봉작들의 특성을 먼저 살펴보자. 주제 면에선 크게 청년과 세대, 소수자, 여성, 노동으로 좁혀볼 수 있다. 청년과 세대의 문제는 <한국이 싫어서> <장손>, 11월 개봉을 앞둔 <아침바다 갈매기는>을 중심으로 이야기해볼 수 있다. <한국이 싫어서>는 동시대 청년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비춘다. 주된 화자는 계나(고아성)로 한국에선 더이상 희망이 없다고 판단해 해외로 떠나 새 삶을 도모하는 인물이다. 계나와 비슷한 캐릭터가 <아침바다 갈매기는>에도 등장한다. <아침바다 갈매기는>은 스러져가는 어촌을 배경으로 젊은 선원 용수(박종환)가 돌연 자취를 감추며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다만 이 영화에선 타국에서 새롭게 시작하려는 청년 용수가 아닌, 마을에 남은 부모 세대의 노인들에게 카메라를 비춘다는 차이점이 있다. <장손>은 삼대에 걸친 대가족의 서사를 펼쳐내는 영화다. 주인공이자 삼대 독자인 성진(강승호)의 존재감이 두드러지진 않지만 그의 시선을 경유해 가족간 갈등을 그리며 한 세대의 퇴장, 바통을 이어받는 청년세대의 모습까지 두루 담아낸다. 세 영화는 청년층이 목도한 문제들, 세대간 갈등과 가치관의 변화와 같은 동시대 한국의 상황을 반영한다. <한국이 싫어서>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 개막작이었으며, <장손>은 지난해 부산영화제 3관왕, <아침바다 갈매기는>이 올해 부산영화제 3관왕임을 고려할 때 세 작품 모두 평단과 관객의 지지를 고루 받았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올해 공개된 퀴어영화 중에선 정체성 혼란, 주변의 반대와 같은 익숙한 묘사에서 나아가 성소수자 커플이 연인 관계를 지속할 때 맞이할 현실적인 문제와 불안을 다룬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딸에 대하여>는 엄마의 시선으로 동성 연인과 동거하는 딸의 노년을 가늠해본다. <럭키, 아파트>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연출된다. 레즈비언 커플인 선우(손수현)와 희서(박가영)는 아래층 할머니의 죽음을 목도하는데, 우연히 그에게 동성 연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뒤로 선우는 그의 죽음에 나이든 자신을 비춰보게 된다. 여성영화의 주된 이슈 중 하나는 임신과 양육이다. <그녀에게>는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 <최소한의 선의>에서는 난임을 겪는 교사와 임신한 학생 사이의 연대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해야 할 일>은 권리를 박탈당한 노동자가 아닌 동료의 해고를 결정해야 하는 또 다른 노동자의 입장에서 구조조정의 문제점을 짚는다. 주인공이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그간 노동영화에서 잘 다뤄지지 않던 영역의 화자를 내세웠다는 점에서 올해 부산영화제 수상작인 <3학년 2학기>와도 같이 논해볼 수 있을 것이다(<3학년 2학기>에선 직업계고 출신의 실습생들이 주인공이다). 앞서 살펴본 영화들이 전에 없던 주제를 도출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같은 주제의 영역 안에서 한 단계 논의를 확장하거나, 사건을 바라보는 주체의 위치를 달리해 시야를 환기하고 사각지대를 조명하려는 시도가 올해 독립영화에서 다수 감지됐다. 어려운 시기에도 창작자들은 끊임없이 분투하는 중이다.
‘독립예술영화 개봉지원 사업’의 변화
<그녀에게>
종종 ‘보고 싶어도 극장에 볼 영화가 없다’는 불만이 들려오곤 한다. 그렇다면 호평받은 독립영화가 밀집된 현 상황은 오히려 호재일까. 하반기에 독립영화들이 연이어 개봉한 데엔 영진위의 ‘독립예술영화 개봉지원 사업’의 변화가 주요하게 작용했다. 지난해 영진위는 상반기, 하반기 총 2회에 걸쳐 독립예술영화 개봉지원을 진행했다. 그러나 올해는 독립영화 개봉지원이 상반기 1회로 통합됐으며 지원 부문 또한 배급사 지원으로 일원화됐다. “예년에는 지원작으로 선정된 경우 약정체결을 한 뒤 9개월 이내에 개봉하면 됐으나 올해는 11월까지 개봉을 완료해야 했다. 그로 인해 지원 발표가 난 후 작품들이 급하게 개봉을 준비했고 9월~11월 사이에 작품들이 몰리게 된 것”(제정주 아토 프로듀서)이다. 개봉지원 사업 결과가 6월 중순에 발표됐기 때문에 “개봉 일정을 고려해볼 수 있던 건 8월 이후였다. 배급사 입장에선 선택할 수 있는 개봉일의 폭이 좁아졌다.”(이지혜 찬란 대표) 마케팅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배급지원이 상하반기로 나뉘었을 땐 여름, 겨울 등 영화마다 어울리는 개봉 시기에 맞춰 지원서를 냈고 그 결과에 따라 마케팅 방향도 잡아갔다. 올해는 그런 시도가 아예 불가한 구조였다.”(조계영 필앤플랜 대표) 독립영화가 관객을 모을 방법 중 하나는 관객과의 대화다. 하지만 작품이 몰리면서 극장에선 개별 작품의 요청대로 이벤트용 시간을 배정하기 어려워졌다. “특히 올해는 재개봉작이 많았다. 독립예술영화관은 상대적으로 다양하게 시간표를 배치한 반면 멀티플렉스 극장은 여전히 관객이 몰릴 것으로 판단되는 영화들에 편중됐다. 결국 수많은 독립영화가 몇 안되는 독립예술영화관의 자리를 나눠가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제정주 프로듀서의 말이다.
일부 작품은 자구책을 강구했다. 9월에 개봉한 네편의 영화 <딸에 대하여> <그녀에게> <장손> <해야 할 일>의 감독과 제작·배급진이 합심해 시작한 ‘한국독립영화 상영캠페인’이 일례다. “극장 개봉을 하면 오랜 기간 영화를 상영하기 쉽지 않고 몇주만 지나면 바로 부가시장으로 넘어가는 문제점이 있다. 그래서 개봉일 기준 8주차까지 극장 상영을 유지하고, 한 영화가 독립예술영화관을 독점하지 않으며 서로 독립영화를 권하고 알리자는 취지”(제정주)로 위의 캠페인이 시작됐다. 10월에는 <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 <공작새> <최소한의 선의> <럭키, 아파트> 네편이 뒤이어 캠페인에 참여했으며 홍보를 담당하는 김태주 로스크 실장은 “기회가 되는 한 해당 캠페인은 장기적으로 이어질 예정”이라고 전했다.
<딸에 대하여>
이런 상황에서도 <딸에 대하여> <그녀에게>는 관객수 2만명을 넘겼고 <장손>은 3만 관객을 돌파했다. 혹여 함께 극장에 걸린 상황이 시너지효과를 낸 것은 아닐까. <그녀에게>를 배급한 김진우 영화로운 형제 실장은 “개별 영화의 작품성이 좋아서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그녀에게>는 가족영화로 포지션을 잡아 애초부터 9월 개봉을 예정하고 있었다. 또한 내부적으로는 여러 차례 진행된 단체관람의 덕을 본 것이 크다고 보고 있다.”(김진우) <해야 할 일>을 배급한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는 “배급지원 발표가 늦어지면서 9월 영화들이 거의 주 단위로 개봉했고 독립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 할지라도 피로도가 있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10월에 개봉한 독립영화들은 9월 개봉작만큼의 주목도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요컨대 ‘2만 관객’이라는 몇몇 결과는 기대작들이 각자의 작품성을 인정받아 안정적인 흥행으로 이어진 것일 뿐 결과적으론 영진위 배급지원 사업의 변화로 인해 다수의 독립영화가 작은 파이를 더 작게 나눠가지며 피해를 입는 상황이 벌어졌다.
캠페인, 단체관람, 찾아가는 영화관 등 개별 작품들의 시도는 분명 유의미하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배급사 인디스토리의 한 관계자는 “하반기에 개봉작들이 몰린 건 맞지만 평소에도 동시기 개봉작들은 항상 있었고 독립영화들에 배정되는 상영관과 스크린이 적다는 것 자체가 아쉬운 부분”이라고 의견을 전했다. “9월 개봉작들이 연달아 2만명을 넘기는 성적을 기록했으니, 시장을 흔들 좋은 작품이 나와 준다면 분위기를 다시 반전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관객들이 좋은 영화를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독립영화가 자력으로 영화를 제작하고 개봉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지원사업까지 줄어든다면 상황은 더 힘들어질 것이다.”(이지혜) “영진위로 표상되는 정부의 지원 및 독립예술영화상영관과 스크린 수의 충분한 확보”(심재명)가 여전히 중요하다.
앞서 확인했듯 창작자들은 새로운 이야기를 길어올리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 적은 수일지언정 좋은 작품엔 여전히 관객의 발길이 이어진다는 것도 증명됐다. 그러나 상업영화만큼의 경제적·수치적 성과를 내지 못한다는 이유로 독립영화에 대한 지원이 점점 줄어든다면, 가령 올해와 같이 배급지원의 횟수가 1회로 줄고 기타 지원의 예산 규모 또한 줄어든다면 수많은 작품들이 빛도 보지 못한 채 사라지게 될 것이다. 진실로 극장에서 볼 영화가 없는, 걸려 있는 영화가 부재한 시대가 오지 않길 바란다.